모순

카테고리 없음|2016. 5. 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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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 새 시즌(시즌6)이 시작된 지 3주 정도 되어간다. 마지막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계정을 오랜만에 꺼내 들어 레벨을 올려보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마음이 복잡할 때, 뭔가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답을 내도 딱히 나아지는 상황이 없을 때. 코너에 몰리듯 디아블로에 들어왔던 것 같다.


오랜만에 접속한 오늘도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손은 바삐 움직이는 것 같지만, 눈은 모니터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몹을 잡는데 지장 없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시선은 옆 모니터를 향해 다른 글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모니터 모서리나 창문 모서리 등의 의미 없는 지점을 응시할 때도 있다. 


이런 의미 없는 시선과 손놀림을 잠시 멈추고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던전을 돌며 쌓인 템들을 정리했는데 문득 굉장히 모순된 감정을 느꼈다.


내 방의 물건들은 항상 규칙이 없이 어질러져 있다. 물론 그 어지러움은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디아블로의 템창을 정리하는 내 모습은 <악세,무기,방어구,셋템,보석 및 재료,임시보관>으로 깔끔하게, 목적에 맞는 정리를 하고 있었다. 물론 템창의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현실의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이곳에서 대신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 게임의 나와 현실의 내가 일치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게임과 현실의 모순됨이 없다면 이런 상황에서 답답함을 더 크게 느낄 것 같거든.


단순히 좋은 아이템을 먹고 레벨을 올리는 게 아니라, 생각을 비우고 그곳에 새로운 생각들을 채워 넣을 수 있는, 마음의 휴식을 주는 특이한 게임이 디아블로인 것 같다.


생각이 정리되었으니 디아블로를 꺼야겠다. 언젠간 다시 켜게 될 날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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